AI가 아무리 빨라도 세상은 '연 2%'로 움직인다…150년간 변하지 않은 성장의 속도
- 크레이머 'O-링 이론': 사슬에서는 가장 약한 고리가 전체 산출을 결정 - 찰스 존스 "미국 1인당 GDP, 150년 가까이 연 2% 안팎으로 꾸준"…전기·자동차·컴퓨터도 이 선을 크게 못 넘어 - 전기는 상용…
"AI가 세상을 통째로 바꾼다"는 말은 매일 들리지만, 경제 통계가 보여주는 세상은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이 간극을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다. 기술이 아무리 빨라도 사회의 생산성이 곧바로 오르지 않는 이유, 그리고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숱한 기술 혁명에도 성장률이 놀랄 만큼 일정했던 이유를 몇 가지 연구로 따라가 본다.
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만큼만 강하다…O-링 이론
설명의 출발점은 경제학자 마이클 크레이머(Michael Kremer)가 1993년 《계간 경제학 저널(QJE)》 108권 3호에 발표한 'O-링 경제발전 이론'이다. 이름은 1986년 챌린저호 참사의 원인이 된 O-링에서 따왔다. 이 이론은 생산을 여러 개의 과업이 이어진 사슬로 보고, 모든 과업이 충분히 잘 수행되어야 전체 가치가 높아진다고 가정한다. 가장 단순한 두 과업 모델에서 산출은 두 과업 품질의 곱(F = B·qi·qj)으로 표현되므로, 한 고리의 품질이 낮으면 나머지가 아무리 좋아도 전체 가치가 깎인다.
크레이머의 원래 관심사는 나라 사이의 소득 격차와 숙련 노동자의 매칭이었다. 그러나 사슬 구조 자체는 AI 시대의 생산성 논의에도 시사점을 준다. 이 적용은 기자의 해석이며 크레이머가 AI를 직접 논한 것은 아니다. 업무 사슬의 한 구간을 AI가 10배 빠르게 만들어도, 사람의 승인 절차, 낡은 시스템 연동, 규제 대응 같은 다른 고리가 그대로라면 전체 산출은 가장 느린 고리에 묶인다. 앞서 크리스미디어가 보도했듯 테크타깃이 인용한 베어링포인트 조사에서 AI로 성과를 본 기업은 74%였지만 사업계획대로 확장한 곳은 13%였고, 확장 장벽 1·2위는 복잡한 규제와 레거시 시스템 통합이었다. 약한 고리가 전체를 붙잡는 모습과 겹친다.
150년간 '연 2%'…기술이 쏟아져도 속도는 같았다
다음 질문은 이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났느냐다. 경제학자 찰스 존스(Charles I. Jones)는 2015년 5월 NBER 워킹페이퍼 '경제성장의 사실들'에서 미국의 1인당 GDP가 거의 150년간 "연 2% 안팎의 놀랍도록 꾸준한 평균 속도"로 성장해 왔다고 정리했다. 1인당 GDP는 1870년 약 3000달러에서 2014년 5만 달러를 넘어 약 17배가 됐다. 그가 제시한 연평균 성장률은 18702007년 2.03%, 19001950년 2.06%, 19502007년 2.16%다. 전기, 자동차, 항공, 컴퓨터, 인터넷이 차례로 등장한 기간 내내 한 자릿수 후반이나 두 자릿수 성장이 아니라 2% 안팎에 머문 셈이다. 같은 표에서 19731995년은 1.82%, 정보기술 확산기인 19952007년은 2.13%였다. 존스는 이 안정성이 훨씬 긴 시간 척도에서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여기서 짚어둘 점이 있다. 이 2%는 미국 1인당 GDP 성장률이며 노동생산성과는 다른 지표다. 존스는 19482013년 시간당 산출 성장 약 2.5%포인트 가운데 약 2.0%포인트를 총요소생산성(TFP)이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 꾸준함을 기술 변화 때문이라고 직접 해석하지는 않았다. '기술이 많아도 속도는 같았다'는 표현은 이 통계가 보여주는 사실을 요약한 것이지, 존스의 인과 주장이 아니다.
전기는 40년 걸렸다…솔로의 역설, 그리고 J커브
기술이 통계에 잡히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역사가 보여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팀 하포드는 2007년 칼럼에서 경제사학자 폴 데이비드(Paul David)의 연구를 소개했다. 하포드에 따르면 백열전구는 1879년에, 뉴욕과 런던의 발전소는 1881년에 등장했지만, 1900년에 관찰자가 보았다면 효율 향상의 증거는 거의 없었다. 증기기관을 발전기로 바꿔도 "생산성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미국 생산성이 크게 뛴 것은 상용화 약 40년 뒤인 1920년대로, 당시 제조업 생산성은 연 5%를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열쇠는 공장 설계의 전환이었다. 한 대의 중앙 엔진에 맞춰 층층이 쌓은 공장이 단층 공장과 흐름 중심의 생산라인으로 바뀌었고, 작업자마다 작은 전동기를 쓰면서 훈련과 책임 구조도 바뀌었다. 데이비드는 1990년 논문 '발전기와 컴퓨터'에서 정보기술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컴퓨터 시대에는 노벨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Robert Solow)가 1987년 뉴욕타임스 북리뷰에서 "컴퓨터 시대는 생산성 통계만 빼고 어디서나 보인다"고 말했다. 이른바 솔로의 역설이다. 에릭 브린욜프슨 등은 2018년 NBER 논문(이후 2021년 《AEJ: 거시경제학》 게재)에서 이를 설명하는 모형으로 '생산성 J커브'를 제시했다. 범용기술에는 새 프로세스, 사업모델, 인력 숙련 같은 막대한 무형 투자가 필요한데, 이 투자는 국민계정에 잘 잡히지 않아 초기에는 생산성이 낮게 측정되고 나중에야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형자산을 반영하면 조정 TFP가 2004년 말 공식 통계보다 약 11.3%, 2017년 말 약 15.9% 높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AI 관련 무형자본의 효과는 지금까지 "작지만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AI 효과, 10년간 TFP 최대 0.66%"
그렇다면 AI의 거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MIT의 다론 아제모글루(Daron Acemoglu)는 2024년 5월 NBER 워킹페이퍼 '인공지능의 단순한 거시경제학'에서 과업 단위 비용 절감을 거시 효과로 환산하는 방식으로 이를 추정했다. 기존 노출도와 생산성 추정치를 쓰면 10년간 TFP 증가는 "최대 0.66%"이고, 쉬운 과업에서 얻은 초기 증거가 어려운 과업에서는 같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하면 0.53% 미만으로 예측했다. 그는 이 효과가 실재하지만 "미미한 수준"에 가깝다는 취지로 논문을 정리했다. 이는 하나의 모형에 기반한 추정으로, 가정을 달리하면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AI가 성장률 자체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는 점을 함께 적어 둔다. 이번 취재에서 그 반대 논거를 따로 검증하지는 않았다.
직업은 사라지기보다 모양을 바꾼다.
노동시장 쪽 증거도 비슷한 방향이다. 예일대 예산연구소(Budget Lab)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진은 2025년 10월 1일 보고서에서, 챗GPT 출시 이후 33개월 동안 노동시장에서 "뚜렷한 교란"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직업 구성의 변화는 과거보다 빠르긴 했지만 인터넷 확산 초기 대비 약 1%포인트 높은 정도였다. 인터넷 시대인 19962002년에는 직업 구성이 1996년 기준 최대 약 7%포인트 달라졌다. 연구진은 변화가 AI 확산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고 인과를 입증하지는 못하며, 역사적으로 큰 기술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펼쳐졌으니 33개월은 짧을 수 있다고 한계도 밝혔다. 이 자료는 약 1년 전 시점의 것이며 이후 갱신분은 이번 취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장기 데이터는 일자리의 '내용'이 계속 바뀐다는 점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오터(David Autor) 등이 2021년 7월 NBER 컨퍼런스에 낸 논문 초안에 따르면 2018년 고용의 약 63%는 1940년에는 존재하지 않던 직함에 속한다. 이 논문은 증강(augmentation)에 노출된 직종에서 새 직함이 나오고, 자동화 노출만으로는 새 직함 출현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정식 출간 전 초안 수치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은행 창구 직원 사례도 자주 인용된다. 경제학자 제임스 베슨(James Bessen)이 2015년 3월 《파이낸스 & 디벨롭먼트》에서 정리한 자료를, 팀 테일러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ATM은 1990년 약 10만 대에서 2015년 약 40만 대로 늘었지만 창구 직원 고용은 유지되거나 소폭 늘었다. 이유로는 창구 직원이 적게 필요한 점포를 더 많이 열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직원의 역할이 현금과 수표 처리에서 고객의 금융 문제를 풀어주는 쪽으로 이동한 점이 꼽혔다. 직무 내용이 바뀌고 점포 수가 늘면서 전체 고용이 유지된 사례다. 모든 직업이 이렇게 된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크리스미디어 진단: 속도가 아니라 설계가 삶을 바꾼다.
이상은 조사 결과이며, 아래는 크리스미디어의 해석이다.
첫째, 연 2%라는 숫자는 느린 것이 아니다. 2%로 복리 성장하면 약 35년 만에 소득이 두 배가 되고, 존스가 정리한 150년 가까이의 17배가 바로 그 결과다. 한 세기 동안 사람들의 삶은 숫자로 보면 꾸준히 풍요로워졌고, 체감으로는 혁명적으로 달라졌다. 그러나 그 변화는 매년 한두 퍼센트씩, 세대를 건너며 쌓인 것이다.
둘째, AI가 이 속도를 갑자기 바꿀 것이라는 기대에는 사슬의 약한 고리가 있다. O-링 구조에서는 AI가 빠르게 만든 구간보다 낡은 시스템, 사람의 판단과 신뢰, 규제 같은 가장 느린 구간이 전체 속도를 정한다. 전기가 40년 걸린 이유도 발전기가 아니라 공장과 조직을 다시 짜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셋째,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AI의 성능을 두고 환호하거나 공포를 느끼는 일이 아니라 그 지능을 담을 업무와 조직,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역사는 기술이 곧바로 삶을 바꾸지 않았고, 삶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받아들일 방식을 만들어 낸 뒤에야 바뀌었다고 말한다.
본 콘텐츠는 글로벌 IT 아키텍처 컨설팅 회사 CHRISCOMPANY의 기술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제공됩니다. 발행: 크리스미디어 (CHRIS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