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렉터와 같다"…美 재무장관, AI 경고론자 정면 비판
베선트 장관 "해법 없는 공포 조성은 리더십 아니다"…아모데이 CEO 직접 겨냥 - 백악관은 법적 규제 대신 '자발적 서약'으로 일단락…"안전한 가속"이 정부 공식 입장 - 한편에선 '판단 전용 AI' 레이스 폭발……
지난 10일간 AI 업계를 관통한 가장 뚜렷한 흐름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AI의 실존적 위험을 둘러싼 워싱턴 내부의 논쟁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거칠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달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판단 전용 AI'라는 새로운 모델 부류를 놓고 빅테크와 국내 기업들까지 가세한 경쟁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는 것이다.
"한니발 렉터와 같다"…베선트 장관, AI 경고론자 직격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3일(현지시간)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AI 규제를 촉구하는 기술업계 리더들을 영화 '양들의 침묵' 속 연쇄살인범 한니발 렉터에 빗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마치 한니발 렉터가 '내가 또 사람을 죽이기 전에 날 막아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해법 없이 과도한 경각심만 불러일으키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베선트 장관은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 등 정부 개입을 요청해온 인사들을 향해, 정부 규제에 기대기보다 기업 스스로 개발 속도를 조절하면 될 일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최근 오픈AI가 내부 테스트 중 안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자체적으로 신규 모델 개발을 보류한 사례를 들며, 연구소들이 이미 이런 책임감 있는 태도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달 아모데이 CEO가 띄운 'AI 속도조절' 제언 이후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워싱턴과 실리콘밸리 사이 신경전의 연장선이다. 백악관은 지난주 법적 구속력을 갖춘 규제 대신, 기업들의 자발적 서약에 의존하는 안전 협약을 체결하며 이 논쟁을 일단락지으려 한 바 있다. 그러나 강제력이 빠진 협약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고, 베선트 장관은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이 '안전한 가속(safe acceleration)'이라고 재차 강조하며 중국에 기술적 우위를 내줘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백악관 회동 이후 아모데이 CEO의 공개 발언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그가 기존의 경고 기조를 쉽게 철회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는 관측도 함께 나온다.
판단 전용 AI 레이스 폭발…'제브' 등장 열흘 만에 3파전
같은 기간, 지난달 큰 화제를 모았던 '판단 전용 AI(Decision AI)'를 둘러싼 경쟁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가열됐다. 지난달 챗GPT 공동개발자 출신 디오고 알메이다가 이끄는 타입세이프AI가 텍스트 대신 유형화된 확률적 판단만 반환하는 모델 '제브(Jev)'를 선보여 주목받은 데 이어, 불과 보름여 만에 경쟁 모델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지난 1일 아마존은 '스트랜즈 디사이더 2B(Strands Decider 2B)'라는 이름의 오픈소스 판단 전용 모델을 공개했다. 알리바바의 큐원3.5(Qwen3.5)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모델은 아파치 2.0 라이선스로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며, 아마존은 자체 평가 기준인 '제브벤치(JevBench) v19'에서 약 72%의 정확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반 소비자용 그래픽카드인 RTX 3090에서도 중간값 기준 106밀리초의 응답 속도를 냈다고 설명해, 고가의 서버 없이도 로컬 환경에서 작업 라우팅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같은 날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클라우드플레어도 오픈소스 판단 모델 '클레프(Clef)'를 공개하며, 엣지 지역에 분산된 그래픽처리장치(GPU) 환경에서 제브보다 더 빠른 응답 속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도 이 흐름에 가세했다. 국내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지난 2일 자체 거대언어모델 '솔라 미니 4'를 기반으로 한 판단 전용 모델 '솔라 디사이드(Solar Decide)'를 출시하며 "제브보다 빠르고 정확하다"고 자신했다.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는 이번 출시와 관련해 모델의 크기보다 기술 혁신이 경쟁력을 가른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열흘 남짓한 사이 미국 빅테크와 국내 스타트업까지 가세해 판단 전용 AI 시장이 3파전, 4파전 양상으로 번진 셈이다. 이는 지난주 다룬 모델 라우팅 흐름, 즉 모든 작업에 값비싼 최첨단 모델을 쓰는 대신 반복적인 판단 업무는 가볍고 빠른 전용 모델에 맡기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밖의 주요 소식…구글 사이버보안 특화 모델, 텐센트의 '우회로'
이 기간 다른 주요 소식들도 이어졌다. 구글은 지난 1일 사이버보안에 특화된 신모델 '제미나이4 아르곤(Gemini 4 Argon)'을 공개하며, 유료 API나 일반 이용자용 '울트라' 버전에 앞서 신뢰할 수 있는 사이버 방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페어윈드(Fairwind) 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제공하기로 했다. 구글에 따르면 이 모델은 사람의 개입 없이도 치명적인 보안 취약점을 자율적으로 찾아내고 검증한 뒤 수정할 수 있으며, 코드 취약점 탐지 평가인 'CWE-bench v1'에서 68%의 점수를 기록했다. 이는 앞서 다룬 GPT-6 아스트라가 사이버보안 부문에서 사상 첫 '치명적' 등급을 받으며 접근을 제한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이버보안 영역에서의 AI 활용이 이제 '제한적 공개'를 전제로 한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중국의 텐센트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미국 클라우드업체 오라클로부터 고성능 AI칩 10만 개를 임대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클라우드 인프라를 거쳐 AI 개발 속도를 유지하려는 시도로 풀이되며, 앞서 다뤘던 미중 간 반도체·AI 경쟁 구도가 수출 규제를 둘러싼 우회 전략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반복되는 질문…"누가 책임지고, 누가 판단할 것인가"
지난 10일간의 소식들을 하나로 꿰면, 결국 반복되는 질문이 보인다. 베선트 장관과 아모데이 CEO 사이의 공방은 AI가 만들어낼 위험을 누가 책임지고 통제할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이고, 제브를 뒤쫓는 판단 전용 AI들의 경쟁은 그 반대편에서 AI에게 실제로 어떤 종류의 '판단'을 믿고 맡길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과정이다. 책임의 소재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과, 실제 업무 현장에서 AI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기술적 실험이 같은 열흘 사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 AI 산업이 서 있는 지점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본 콘텐츠는 글로벌 IT 아키텍처 컨설팅 회사 CHRISCOMPANY의 기술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제공됩니다. 발행: 크리스미디어 (CHRIS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