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은 이미 상품이 됐다"…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이 저무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들
- 컴스코어 "챗GPT 점유율 반년새 70%→50%로"…클로드·제미나이 급성장 - "속도 늦추자"던 3사, 정작 9월에만 신모델 줄줄이 출시…에이전트 최전선은 이미 딴 얘기 - 英 FT "AI연구원들 번아웃·병가 확…
지난 열흘 사이 나온 네 갈래의 소식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파운데이션 모델 그 자체를 누가 더 잘 만드느냐를 놓고 벌이던 경쟁의 의미가 빠르게 옅어지고, 정작 그 지능을 가지고 무엇을 새로 설계하고 만들어낼 것이냐는 훨씬 더 크고 아직 손대지 않은 질문이 눈앞에 놓여 있다는 신호들이다.
챗GPT 독주 시대의 종언…시장은 이미 갈라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가 22일 공개한 '2026년 2분기 AI 인텔리전스 리포트'는 이런 흐름을 숫자로 보여준다. 전체 AI 프롬프트 사용량 가운데 챗GPT가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월 70%에서 6월 50%로 넉 달 만에 20%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앤트로픽의 클로드는 2%에서 11%로, 구글의 제미나이는 17%에서 30%로 각각 몸집을 키웠다. 한 회사가 시장 전체를 사실상 독점하던 구도가 반년 만에 3파전, 혹은 그 이상의 각축전으로 바뀐 셈이다. 이는 이제 어떤 모델이 절대적으로 우월한가를 가리기보다, 작업의 성격에 따라 여러 모델을 나눠 쓰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속도 늦추자"던 3사, 정작 9월엔 신모델을 쏟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시장 재편이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모델 출시 경쟁 자체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AI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도 이에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세 회사는 그로부터 불과 며칠 사이 나란히 신모델을 출시했다. xAI는 21일 자사 역대 최고 성능이라고 소개한 '그록 4.7'을 내놨고, 앤트로픽은 '오퍼스 5' 출시 두 달 만에 후속작 '오퍼스 5.5'를 공개하며 이를 '최상위급 성능을 낮은 비용과 높은 효율로 구현한 에이전트형 모델'이라고 소개했다. 오픈AI 역시 이미 이달 초 GPT-6 아스트라를 내놓은 데 이어 새로운 업데이트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로는 속도조절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제품 출시 속도를 늦추지 않는 이런 모습은, 이제 모델 성능 그 자체의 우위보다 그 모델을 활용해 실제로 무엇을 해내느냐가 더 중요한 경쟁의 축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최전선의 그림자…"우리가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있나"
이런 질주의 이면에서 치러지는 인간적 비용도 함께 드러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보도에서, 프런티어 AI 모델을 독립적으로 점검하는 영국 AI안전연구소(AISI)를 비롯해 오픈AI·앤트로픽·구글 딥마인드 등 선두 기업 직원들 사이에서 번아웃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직 AISI 연구원은 AI가 사람도 찾아내지 못한 코드 결함을 발견하거나 자연계에 없던 바이러스를 설계하는 수준에 이르자, "이걸 멈출 수 있는 게 있을까, 우리가 세상이 불타는 걸 보고 있는 건가"라는 불안이 동료들 사이에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FT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오픈AI·앤트로픽·딥마인드 3사에서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퇴사한 고위급 연구원이 12명을 넘는다. 이달 초 사임한 한 연구원은 두 회사가 인류의 미래를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화려한 신모델 출시 소식이 이어지지만, 그 안쪽에서는 이 기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의 무게를 감당하기 벅차하는 모습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알리바바의 선언…"지능은 상품 됐지만, 진짜 혁신제품은 아직"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상징적인 발언은 정작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나왔다. 알리바바는 22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윈치대회(압사라 콘퍼런스)'에서 AI 모델과 AI칩, AI 클라우드를 아우르는 풀스택 전략을 공개하며 차세대 큐원(Qwen) 모델을 최대 10조 개 파라미터 규모로 키우고, 자체 개발한 신형 AI칩 '전우V900'(기존 대비 성능 3배)을 함께 선보였다. 그런데 이 발표에서 정작 눈길을 끈 것은 스펙 경쟁이 아니라 경영진의 메시지였다. 차이충신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이날 "알리바바는 풀스택 AI 구축에 확고하게 투자해 AI가 기술적 돌파구에서 가치 창출로 나아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융밍 알리바바그룹 CEO는 한발 더 나아가, AI가 모든 영역에 침투하며 기계가 사고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으면서 지능이 대규모로 공급되는 상품으로 바뀌고 있지만, 정작 이 기계 지능 시대를 대표할 '진정한 혁신 제품'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지금 이 순간 전 세계 AI 업계가 처한 위치를 정확히 짚어낸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이미 거대한 자본과 인재가 투입돼 누구나 쓸 수 있는 대량생산 상품처럼 빠르게 값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지능을 활용해 기존에 없던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산업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고, 사람들의 일상을 실질적으로 재구성해낼 '제품'과 '서비스'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수준이라는 것이다.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이 저무는 자리에서
이번 주 나온 네 갈래의 소식을 하나로 엮으면 그 방향이 선명해진다. 시장 점유율은 이미 여러 회사로 분산되기 시작했고, 모델 자체는 두 달, 심지어 하루 간격으로 쏟아지며 성능 격차의 의미를 스스로 지워가고 있다. 그 경쟁을 떠받치는 최전선의 연구자들조차 지금의 속도가 과연 옳은 방향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소진되고 있으며, 이런 흐름 한가운데서 세계 최대 규모의 AI 투자를 이어가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마저 정작 '진짜 혁신 제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는 크리스미디어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짚어온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둘러싼 경쟁은 이제 더 이상 결정적인 승부처가 아니다. 모델의 지능 수준이 상향평준화되고 가격이 급격히 낮아지는 지금부터가, 오히려 그 지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를 설계하고 각 산업의 핵심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는 진짜 경쟁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경쟁은 아직 초입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의 진료 프로세스, 공장의 생산 흐름, 금융의 심사 체계, 교육 현장의 학습 방식은 여전히 AI 이전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는 재료가 이미 차고 넘치도록 준비된 지금, 그 재료로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을 실제로 다시 설계해내는 작업은 이제서야 각 분야에서 하나둘 첫걸음을 떼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년간 세상을 실제로 바꿔놓을 변화는, 어떤 모델이 벤치마크에서 몇 점을 받았는지가 아니라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본 콘텐츠는 글로벌 IT 아키텍처 컨설팅 회사 CHRISCOMPANY의 기술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제공됩니다. 발행: 크리스미디어 (CHRIS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