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만1000명 회사에 에이전트 1만 개…기업 내부 시스템, 이미 AI가 채우고 있다
- LG유플러스, 임직원 수와 맞먹는 업무용 에이전트 1만여 개 사내 시스템에 등록 - SK텔레콤 "목표는 기술 도입 아닌 AI에 업무 위임"…카카오모빌리티·네이버도 실전 배치 - 그러나 에이전트 이니셔티브의 88%…
기업의 사내 시스템이 조용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처리하던 내부 업무 프로세스 안으로 AI 에이전트가 직접 걸어 들어와 실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9일 서울 롯데월드타워에서 파이낸셜뉴스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개최한 'AI월드 2026' 행사에서는 이런 변화가 이미 국내 대기업 내부에서도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직원 수와 맞먹는 에이전트"…국내 대기업 사내 시스템의 변화
이날 'AI와 일터의 미래' 세션에 나선 한영섭 LG유플러스 AI R&D 랩장(CTO)은 현재 LG유플러스 사내 시스템에 임직원 약 1만1000명과 맞먹는 규모인 1만여 개의 업무용 에이전트가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 이 에이전트들은 통신망 장애를 감지하고 원인을 분석해 담당자에게 통보하는 업무, 그리고 과거 70여 개 절차를 거쳐야 했던 정산·청구서 작성과 엑셀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데 쓰이고 있다. 한 랩장은 사람이 더 이상 직접 하지 않아도 될 업무가 무엇인지 전체 업무 영역에서 찾아내고, 이를 작은 단위로 쪼개 자동화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의 접근은 한발 더 나아간다. 같은 세션에서 김인수 SK텔레콤 AI보드 리더는 진정한 'AI 네이티브 기업'이란 사람과 AI가 함께 일하도록 회사 조직 자체를 다시 설계한 회사라고 정의하며, 회사의 목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AI에 위임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AI전환(AX) 리더십에 필요한 역량으로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는 능력, 무엇을 AI에 맡길지 판단하는 능력, AI가 내놓은 결과를 검증하는 능력 세 가지를 꼽았다. 이건복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 어드바이저는 이 자리에서 기업 내부 데이터가 담당자별로 흩어져 있거나 AI와 연결되지 않은 상태로는 이런 시도가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데이터 연계와 에이전트 관리·책임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변화는 통신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배차 최적화와 실시간 수요 예측에 에이전트 AI를 적용해 피크타임 배차 효율을 약 18% 끌어올렸다고 밝혔고, 네이버는 자체 개발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 기업용 메신저 에이전트 '네이버웍스'를 통해 회의록 자동 작성과 결재 문서 검토, 인사 관련 질의응답을 처리하고 있다. 네이버웍스 AI 에이전트는 이미 국내 600여 개 중견·대기업 고객사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된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포춘500대 기업 가운데 68%가 올해 안에 최소 하나 이상의 AI 에이전트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파일럿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사례 뒤편…10곳 중 9곳은 '프로덕션 문턱'을 못 넘는다
그러나 이렇게 화려하게 소개되는 성공 사례들 뒤편에는, 훨씬 더 많은 기업이 겪고 있는 좌절의 현실이 자리한다. 시장조사기관 IDC와 레노버가 공동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에이전트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업의 88%가 실제 프로덕션(실사용) 단계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한발 더 나아가, 2027년 말까지 진행 중인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결국 취소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가트너가 꼽은 취소 사유는 비용 급증, 불명확한 비즈니스 가치, 그리고 부적절한 리스크 통제 세 가지다. 앞서 소개된 LG유플러스나 SK텔레콤 같은 사례가 '전체 업무를 작은 단위로 쪼개고, 사람이 결과를 검증하는' 체계를 갖춘 뒤에야 성과를 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실패 사례들의 반작용으로 읽힌다.
"OS의 드라이버 서명처럼"…에이전트 감시하는 스타트업에 돈 몰린다
이런 실패의 상당 부분이 에이전트를 사내 시스템에 '안전하게' 풀어놓는 문제, 즉 거버넌스와 보안의 공백에서 비롯된다는 진단이 확산되면서, 투자업계의 관심도 빠르게 이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장분석업체 포캐스트(Forkast) 집계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벤처캐피털은 엔터프라이즈 AI 에이전트의 보안·거버넌스를 다루는 기업 12곳에 총 4억350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 가운데 9건이 '에이전트를 기업 내부에서 안전하게 운영하는 문제'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초기 시드 단계에서 5000만 달러(세쿼이아캐피털 1000만 달러, 그린오크스 4000만 달러)를 유치한 스타트업 에어(AIR)는, AI 에이전트가 사용하는 스킬과 플러그인, MCP(모델컨텍스트프로토콜) 서버를 사전에 발굴하고 검증하는 인라인 방화벽을 제공한다. 야이르 사반 에어 CEO는 이를 운영체제(OS)가 드라이버에 서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원리에 빗대어, AI 에이전트가 쓰는 스킬과 플러그인, MCP에도 동일한 수준의 '서명 검증'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기업들이 이제 에이전트를 얼마나 많이,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를 넘어, 그 에이전트들이 사내 시스템 안에서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통제하는 문제로 관심의 축을 옮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입에서 통제로…사내 시스템의 다음 단계
결국 지금 기업 내부 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는 두 갈래로 요약된다. 한쪽에서는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카카오모빌리티, 네이버처럼 AI 에이전트를 실제 업무 프로세스 깊숙이 들여보내 가시적인 효율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 못지않게 많은 기업이 에이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가 프로덕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하고 있으며,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거버넌스·보안 스타트업들에 벤처 자금이 몰리고 있다. 기업 내부 시스템이 AI 에이전트로 채워지는 속도만큼, 그 에이전트들을 통제하고 검증하는 체계를 함께 갖추는 일이 이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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