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도입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6000명 CEO 조사가 드러낸 냉정한 현실
- 미·영·독·호 CEO 6000명 조사, 기업 69% AI 도입에도 "생산성·고용 영향 없다" 90% - 향후 3년 기대치도 "생산성 +1.4%" 그쳐…경영진·직원 인식차는 더 벌어져 - PwC "CEO 매출 자신…
"AI 도입했는데 달라진 게 없다"…6000명 CEO 조사가 드러낸 냉정한 현실
- 미·영·독·호 CEO 6000명 조사, 기업 69% AI 도입에도 "생산성·고용 영향 없다" 90% - 향후 3년 기대치도 "생산성 +1.4%" 그쳐…경영진·직원 인식차는 더 벌어져 - PwC "CEO 매출 자신감 5년래 최저"…"AI 약속과 현실 사이 격차 메우기"가 다음 과제로
서울 = 취재기자
지난 2년간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한 인공지능(AI)이 실제로 회사의 생산성과 실적을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묻는 대규모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결론은 예상보다 훨씬 냉정했다. 미국 국가경제연구소(NBER)가 올해 2월 공개한 워킹페이퍼 '기업의 AI 데이터(Firm Data on AI)'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절대다수가 지난 3년간 자사의 생산성이나 고용에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화려한 도입률 수치 뒤에, 정작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기업 현장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6000명에게 물었더니…"도입은 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이번 조사는 미국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영국 영란은행, 독일 분데스방크, 호주 맥쿼리대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미국·영국·독일·호주 4개국의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고위 재무 담당 임원 약 6000명에게 동일한 설문을 던졌다. 조사를 이끈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 등 연구진은 이를 통해 네 가지 핵심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선 조사 대상 기업의 69%가 이미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고 있었으며, 미국 기업으로 좁히면 그 비율은 78%까지 올라갔다. 젊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AI 도입률도 높았다. 임원 3명 중 2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AI를 사용한다고 답했지만, 정작 그 사용 시간은 주당 평균 1.5시간에 그쳤다.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세 번째 결과다. 지난 3년간 AI가 자사 실적에 미친 영향을 묻자 응답 기업의 10곳 중 9곳이 고용이나 생산성 어느 쪽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것이다. 이는 뒤이어 나온 여러 매체의 후속 보도에서 "80% 이상의 기업이 AI로부터 어떤 생산성 개선도 확인하지 못했다"는 헤드라인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미래는 낙관?…경영진과 직원의 동상이몽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지난 성과에는 냉담한 평가를 내린 같은 경영진들이, 앞으로 3년에 대해서는 여전히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참여한 경영진들은 향후 3년간 AI가 자사 생산성을 평균 1.4%, 산출(매출·생산량)을 0.8% 끌어올리는 대신, 고용은 0.7% 줄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경영진만 따로 떼어보면 이 기대치는 생산성 2.3%, 고용 감소 1.2%로 오히려 더 커졌다.
문제는 이 기대가 정작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생각과는 정반대라는 점이다. 연구진이 미국 내 직원 약 3000명을 별도로 조사한 결과, 직원들은 AI가 향후 3년간 자기 회사의 고용을 오히려 0.5% 늘릴 것이라 내다봤다. 같은 회사, 같은 기간을 두고 경영진은 "AI로 사람을 줄이겠다"고 예상하는데, 직원들은 "AI로 오히려 사람이 늘 것"이라 기대하는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업(-2%)과 숙박·음식업(-1.8%)에서 경영진이 예상하는 고용 감소 폭이 가장 컸는데, 이는 지식노동자의 업무 대체를 둘러싼 그간의 논쟁과 달리, 실제로는 정형화된 대규모 운영 인력이 우선 감원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PwC·딜로이트도 비슷한 신호…"매출 성장 자신감 5년래 최저"
이런 진단은 이 조사만의 특수한 결과가 아니다. 회계·컨설팅업체 PwC가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제29회 글로벌 CEO 서베이(95개국 CEO 4454명 대상)에서는, 향후 12개월간 자사 매출 성장에 자신감을 보인 CEO 비율이 30%에 그쳐 2022년(56%)의 거의 절반 수준,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PwC는 그 배경으로 AI 투자 대비 고르지 못한 성과와 지정학적 리스크, 사이버 위협 심화를 함께 꼽았다. 지난 5월 인력관리업체 글로벌라이제이션파트너스가 임원 28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73%가 AI 투자 대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답했고, 70%는 올해 안에 눈에 띄는 생산성 개선이 없으면 AI 투자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리더급 3235명을 조사한 '2026 기업 AI 현황' 보고서에서는 66%가 생산성 개선을 체감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매출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응답은 20%에 그쳤고, AI로 업무나 제품을 근본적으로 바꿨다는 응답은 34%에 머물렀다.
"왜 개인은 느끼는데 회사 전체는 못 느낄까"…AI 앞에 놓인 과제
그렇다고 AI의 효과 자체가 허상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리콘밸리 안팎에서 매일 챗봇으로 코드를 짜고 이메일 초안을 다듬는 개인 사용자들의 체감 생산성은 분명 존재한다. 스탠퍼드·매사추세츠공과대(MIT) 공동 연구팀이 고객 상담 업무를 분석한 조사에서는 AI 보조를 받은 상담원의 생산성이 평균 14% 높아졌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럼에도 이런 개인 단위의 효율 향상이 회사 전체의 실적 지표로는 잘 옮겨붙지 않는 현상을, 경제학계에서는 198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가 컴퓨터 도입 초기에 남긴 발언을 빌려 '솔로의 생산성 역설'이라 부른다. 정보기술(IT)이 실제 국가 생산성 통계에 반영되기까지 1990년대에는 거의 10년이 걸렸는데, AI 역시 비슷한 시차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격차를 메우는 것이 바로 지금 AI 산업과 기업 경영진 앞에 놓인 과제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개인의 효율 향상이 조직 전체의 산출로 전환되지 못하고 오히려 늘어난 업무량에 흡수되는 현상, 그리고 검증·수정·품질관리에 들어가는 '숨은 비용'이 표면적인 시간 절약분을 상쇄하는 문제를 꼽는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아제모을루 MIT 교수도 앞서 자신의 연구에서 AI의 장기 생산성 효과를 10년간 0.5% 수준의 완만한 개선으로 추정하면서, 이는 결코 무시할 수치는 아니지만 업계가 쏟아낸 기대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AI가 다음 국면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더 강력한 모델을 내놓는 일 못지않게, 기업이 업무 프로세스를 실제로 재설계하고 데이터를 정비하며 성과를 구조적으로 측정하는 '조직의 숙제'를 함께 풀어내는 데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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