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의 SW아키텍처] AI 예산은 느는데, 결국 옛날 시스템에 돈을 더 쓴다…방치되는 기술부채의 역설

- 포춘500대 기업 소프트웨어 70%가 20년 이상…미 연방정부 IT예산 80%가 '유지보수'용 - 기업 임원 91% "AI 때문에 기술 지출 늘었다"…정작 그 돈, 새 시스템 아닌 낡은 시스템 붙드는 데 쓰여 -… — AI SW 아키텍처, 기술부채

AI가 기업의 낡은 시스템을 걷어내고 조직을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실제 돈의 흐름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수개월간 나온 여러 조사와 취재를 종합하면, AI 도입 예산이 늘어난 만큼 오히려 낡은 레거시 시스템을 유지·보수하는 데 들어가는 지출도 함께 불어나고 있다. 정작 그 시스템 안에 오랜 세월 쌓인 기술부채 자체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여러 데이터가 가리키는 공통된 결론이다.

20년 넘은 소프트웨어가 여전히 기업의 심장부를 돌린다

이 역설의 출발점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포춘500대 기업이 쓰는 소프트웨어의 70%는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미국 연방정부 상황도 다르지 않다. 미 정부회계감사원(GAO)이 올해 낸 보고서를 보면, 연방정부가 매년 정보기술(IT)에 쏟는 1000억 달러 이상의 예산 가운데 약 80%가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 특히 레거시 시스템을 운영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비율은 GAO가 수년째 반복해서 지적해온 수치로, AI 붐이 일기 훨씬 전부터 굳어져 있던 구조다.

문제는 AI가 이 구조를 바꾸기는커녕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맥킨지 리서치는 기술부채, 즉 낡은 시스템을 방치한 대가로 쌓이는 비용이 기업 전체 기술투자 지출의 4050%를 잠식하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조차 그 부채 때문에 추가로 1020%의 비용을 더 치러야 한다고 분석했다. 한 유럽계 대형 은행의 경우 IT 인력의 70%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단순히 레거시 시스템을 굴러가게 유지하는 데만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쓰려면 낡은 시스템부터 손봐야"…역설을 만드는 메커니즘

그렇다면 AI 예산이 왜 새 시스템이 아니라 옛 시스템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IT 전문매체 CIO닷컴이 올해 2월 보도한 취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이노와이즈(Innowise)의 드미트리 나자레비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그 메커니즘을 직접 설명했다. 그는 회사의 2026년 IT 예산 증가분 가운데 절반은 AI에, 나머지 절반은 보안과 현대화, 비용 관리에 쓰일 것이라며, 이 가운데 현대화 지출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낡고 오래된 시스템이 AI 기술의 효과를 제한하고 배포 일정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즉 AI를 제대로 돌리려면 그 밑단의 낡은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시스템부터 손봐야 하는데, 그 작업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투자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을 AI가 겨우 돌아갈 수 있는 수준까지 '떠받치는' 방어적 지출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개별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컨설팅업체 웨스트먼로파트너스가 대기업 임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91%는 AI 때문에 자사의 기술 지출이 늘고 있다고 답했고, 74%는 AI로 인해 외부 계약직 인력에 대한 지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소프트웨어 지출이 전년 대비 15.2%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가운데 9%포인트는 기존 서비스에 대한 단순 가격 인상분이고, 남은 증가분의 대부분은 AI 애플리케이션과 인프라 소프트웨어로 쏠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늘어난 예산의 상당 부분이 실질적인 레거시 해소보다는 물가 상승분을 메우거나 AI 자체를 새로 사들이는 데 쓰이고, 정작 그 밑단의 오래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에는 충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코드는 더 빨리 쌓이는데, 부채는 그대로

AI가 개발 현장에 들어온 이후 코드 자체가 다뤄지는 방식도 이 역설을 뒷받침한다. 코드 분석업체 깃클리어(GitClear)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AI 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개발 환경에서는 코드 변경량이 39% 늘었지만, 정작 기술 리더의 75%는 앞으로 1년 안에 AI 지원 개발로 인한 기술부채가 중간 이상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답했다. AI가 코드를 빠르게 생성해내는 속도와, 그 코드가 조직의 장기적인 구조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사람이 검토하고 정리하는 속도 사이에 점점 더 큰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여러 조사가 가리키는 그림은 하나로 모인다. AI 예산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 돈의 상당 부분은 새로운 혁신이 아니라 낡은 시스템을 AI 시대에도 억지로 버티게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쌓여 있던 기술부채는, AI라는 화려한 이름 아래 여전히 손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며 기대했던 것은 '가벼워진 조직'이었지만, 지금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AI를 얹기 위해 옛 시스템에 한 겹의 지출을 더 쌓아 올리는 모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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