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삼킨 내 첫 일자리"…4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94%가 'AI 고노출' 업종
한국은행 "2022년 이후 청년 일자리 28만5000개 감소, 26만8000개가 AI 고노출 업종" - 대기업 신규채용도 4년새 15%↓…30세 이하 직원 수, 사상 처음 50대 밑돌아 - 구직 청년 64% "5년… — 고용, AI Agent
최근 열흘 사이 한국 언론이 쏟아낸 인공지능(AI) 관련 기사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화려한 신모델 출시 소식이 아니라 '일자리'였다. 특히 사회에 처음 발을 딛는 청년층이 그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되면서, AI가 산업 현장을 넘어 개개인의 삶 속으로 얼마나 깊숙이 들어왔는지를 새삼 실감케 했다.
4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28만5000개, 열에 아홉은 'AI 고노출' 업종
지난 18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청년고용 위축, AI 탓인가? 변화하는 경력 사다리와 대응과제' 보고서는 이런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자료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4년간 청년층(1529세) 일자리는 28만5000개 줄었는데, 이 가운데 26만8000개, 즉 94%가 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정보서비스업(-31.4%), 출판업(-27.4%),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16.6%), 전문서비스업(-11.6%) 등 AI 활용 가능성이 큰 지식서비스업일수록 청년 일자리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전체 신규 채용에서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과거(20142019년) 36.9%에서 최근(20242026년) 29.3%로 7.6%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챗GPT가 등장한 2022년 11월 이후 대졸 이상 청년 실업률은 평균 7.0%로, 전문대졸 이하(5.4%)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나 '고학력일수록 안전하다'는 통념도 흔들리고 있다. 이미 취업한 청년들의 이탈도 늘었다. AI 고노출 업종에서 청년층의 월평균 유출 규모는 3700명에서 4900명으로 약 32% 늘어난 반면, 유입 규모는 3만2600명에서 2만9100명으로 약 11% 줄었다.
다만 한국은행은 이 같은 청년고용 부진을 AI만의 영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오삼일 한은 고용연구팀장은 AI가 주로 대체하는 업무가 매뉴얼화된 초급 업무인 만큼 사회초년생인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경력직 선호 확대와 기업 내부교육 약화,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도제식 학습 기회 축소 등 기존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AI와 맞물려 상황을 악화시켰을 가능성도 함께 짚었다.
대기업 채용 지형도 바뀐다…30세 이하 직원, 사상 처음 50대에 역전당해
변화는 통계 뒤편의 실제 채용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500대 기업 중 고용 현황을 공개한 132개사의 20232025년 동향을 분석한 결과, 신규 채용 규모(113개사 기준)는 2023년 10만9456명에서 지난해 9만2680명으로 15.3% 감소했다. 이 가운데 30세 이하 청년 채용 인원은 26만7343명에서 23만434명으로 13.8% 줄어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2%에서 18.3%로 낮아졌다. 반대로 50세 이상 고용 인원은 22만1333명에서 23만1848명으로 늘면서 비중이 17.5%에서 18.4%로 높아졌다. 30세 이하 임직원 수가 50세 이상 근로자 수보다 적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내 대기업 인력 구조에 뚜렷한 세대 역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의 체감 불안도 수치로 드러났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발표한 'AI 확산에 따른 청년 일자리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53.9%는 향후 5년 내 현재 또는 희망하는 직무가 AI로 대체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특히 구직 중인 청년은 이 비율이 63.8%로, 이미 취업한 청년(49.4%)보다 14.4%포인트나 높았다. 사무종사자·관리자·전문가 등 AI 고노출 직무군에서는 58.4%가 대체 가능성을 높게 봤으며, 금융·보험·정보통신 등 AI 고노출 업종에서도 54.5%가 같은 우려를 나타냈다.
정부 "8월 중 청년일자리 회복방안"…한편에선 45개월째 이어지는 취업자 감소
이 같은 지표에 정부도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청년 고용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13일 비상경제본부 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회복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발표하고, 제조·건설업 등 부진업종에 대해서도 맞춤형 고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2일 관계부처 합동 일자리전담반(TF) 회의를 열어 7월 고용동향을 점검했으며, 청년 고용 부진의 원인으로 인구 감소, 산업구조 변화, AI 전환, 경력직 선호, 대외 불확실성 등을 복합적으로 지목했다. 8월 중 발표될 대책에는 반도체·AI 등 첨단산업 인력 양성 확대와 민간·공공의 일경험 기회 확대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현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낮다. 6월 청년 고용률은 43.9%로 26개월 연속 하락했고, 체감 실업률을 보여주는 청년 확장실업률은 17%에 달했다. 한 노동 전문매체는 이달 취업준비생들의 일상을 취재하며 "창업·스타트업 채용에서도 경력직을 우선한다는 공고가 늘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로봇세 걷고, 인간전용구역 만들자"…빌 게이츠가 던진 세계적 화두
이 같은 한국의 청년고용 위축은 결코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 빌 게이츠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에 12쪽 분량의 에세이 '격동의 AI 시대가 왔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한다'를 공개하고, 이 같은 흐름에 세계가 전혀 대비돼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AI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평등 수단이 될 수도, 최악의 불평등 원인이 될 수도 있다"며 AI 전환기의 위험으로 △대규모 일자리 축소 △AI를 이용한 범죄 증가 △아동 발달과 인간관계 저하 세 가지를 꼽았다.
특히 게이츠는 2030년 이전에 '스마트 로봇'이 건설·숙박업 등 육체노동 분야에서도 사람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대응 방안으로 '로봇·AI 토큰세' 도입과 '인간전용구역(Human Reserved)' 지정을 제안했다. 로봇세는 사람을 고용하면 사회보장세를 내야 하지만 로봇 등 기계를 도입하면 오히려 세제 혜택을 받는 현행 제도가 사람을 기계로 대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인간전용구역은 자연보호구역처럼 노인 돌봄, 보육, 정신건강 상담 등 인간의 공감과 정서적 교감이 필수적인 영역에는 AI 도입을 의도적으로 제한하자는 구상이다.
한국의 청년들이 통계로 마주한 '사라진 일자리 94%'와, 빌 게이츠가 경고한 '준비되지 않은 격동의 시대'는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AI가 만들어낼 생산성의 과실을 누가 가져가고, 그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노동시장에 자리 잡을 것인가. 정부의 8월 대책 발표를 앞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통계 속 숫자를 넘어 현실의 채용 공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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